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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창조적 노력이 발판▲ 한산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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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작성일25-08-11 13:56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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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상위노출 이순신의 창조적 노력이 발판▲ 한산도 제승당임진왜란 당시 작전본부 운주당 터에 1738년 조경이 세운 제승당이다.ⓒ 여해연구소전국에 있는 이순신의 유적지 중에서 경남 통영의 한산도(閑山島)는 명칭의 의미부터 남다르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섬이라는 뜻인데, 실제 섬의 형태를 보면 문어포항부터 하포마을, 야소, 진두항, 소고포, 관암항까지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 본래 한산도의 한(閑)자는 "한가롭다"는 의미보다는 "막다(捍)", "가리다(遮)"의 의미(『설문해자』)가 한산섬의 지형과 더 잘 맞는다.임진왜란 당시 한산도는 해영(海營)으로서 하나의 산이 바다 굽이를 포위하여 안에서는 배를 감출만하고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천혜의 요새로 알려졌다. 이곳은 호남으로 가는 일본함선의 경로이므로, 이순신은 이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여수 본진이 좌측에 치우쳐있다는 이유를 들어 조정에 인가를 받아 견내량 해협의 봉쇄작전을 세우고 마침내 1593년 7월 15일 한산도로 진영을 옮겼다. 『선조실록』(1593, 7, 15)을 보면, 그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조정에 올린 치계에, "이순신과 약속하여 한산도에 진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그렇다면 이순신이 삼도(三道, 경상·전라·충청)의 수군을 모아 해상에서 훈련한 장소는 당연히 한산도 앞바다로 봐야한다. 계사년 7월 14일 진영을 한산도 두을포(豆乙浦, 의항)로 옮기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조선 수군의 진영을 10번 옮기고 그후 정유년까지는 진영을 옮기지 않는다.흉도(胸島) ▶칠천량(漆川梁) ▶유자도(柚子島) ▶세포(細浦, 거제 성포) ▶ 오양역(烏壤驛) ▶ 역포(亦浦) ▶ 망하응포(望何應浦) ▶ 불을도(弗乙島) ▶걸망포(巨乙望浦) ▶ 세포(細浦, 한산도끝 비산도 손깨) ▶한산도 두을포그 당시 조선을 군사지원을 하기 위해 한산도에 방문한 총병관 장홍유(張鴻儒)가 한산도에 올라가 보고 "진정한 진처(陣處)"라고 말하였다.(1594, 7,17) 한산도는 연안 곳곳에 배를 숨기기 좋고 밖에서 쉽게 노출되지 않는 지형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전쟁하기에 유리한 전략적인 요충지로 여긴 것이다.이순신은 한산도로 진영을 옮긴 이후 3년 7개월 동안 삼도수군통제사로서 해상작전을 지휘하였다. 그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부산에서 철수한 것처럼이순신의 창조적 노력이 발판▲ 한산도 제승당임진왜란 당시 작전본부 운주당 터에 1738년 조경이 세운 제승당이다.ⓒ 여해연구소전국에 있는 이순신의 유적지 중에서 경남 통영의 한산도(閑山島)는 명칭의 의미부터 남다르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섬이라는 뜻인데, 실제 섬의 형태를 보면 문어포항부터 하포마을, 야소, 진두항, 소고포, 관암항까지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 본래 한산도의 한(閑)자는 "한가롭다"는 의미보다는 "막다(捍)", "가리다(遮)"의 의미(『설문해자』)가 한산섬의 지형과 더 잘 맞는다.임진왜란 당시 한산도는 해영(海營)으로서 하나의 산이 바다 굽이를 포위하여 안에서는 배를 감출만하고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천혜의 요새로 알려졌다. 이곳은 호남으로 가는 일본함선의 경로이므로, 이순신은 이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여수 본진이 좌측에 치우쳐있다는 이유를 들어 조정에 인가를 받아 견내량 해협의 봉쇄작전을 세우고 마침내 1593년 7월 15일 한산도로 진영을 옮겼다. 『선조실록』(1593, 7, 15)을 보면, 그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조정에 올린 치계에, "이순신과 약속하여 한산도에 진을 쳤다"는 내용이 보인다.그렇다면 이순신이 삼도(三道, 경상·전라·충청)의 수군을 모아 해상에서 훈련한 장소는 당연히 한산도 앞바다로 봐야한다. 계사년 7월 14일 진영을 한산도 두을포(豆乙浦, 의항)로 옮기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조선 수군의 진영을 10번 옮기고 그후 정유년까지는 진영을 옮기지 않는다.흉도(胸島) ▶칠천량(漆川梁) ▶유자도(柚子島) ▶세포(細浦, 거제 성포) ▶ 오양역(烏壤驛) ▶ 역포(亦浦) ▶ 망하응포(望何應浦) ▶ 불을도(弗乙島) ▶걸망포(巨乙望浦) ▶ 세포(細浦, 한산도끝 비산도 손깨) ▶한산도 두을포그 당시 조선을 군사지원을 하기 위해 한산도에 방문한 총병관 장홍유(張鴻儒)가 한산도에 올라가 보고 "진정한 진처(陣處)"라고 말하였다.(1594, 7,17) 한산도는 연안 곳곳에 배를 숨기기 좋고 밖에서 쉽게 노출되지 않는 지형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전쟁하기에 유리한 전략적인 요충지로 여긴 것이다.이순신은 한산도로 진영을 옮긴 이후 3년 7개월 동안 삼도수군통제사로서 해상작전을 지휘하였다. 그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부산에서 철수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왜적들이 바다로 식량 운송 후 다시 전쟁하려는 것에 대한 방어 작전이었다 네이버상위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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