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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으뜸가는 가람, 김천 황악산 직지사|하늘에서 본 우리 땅 우리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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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isa 작성일24-09-02 16:54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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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을 부산고구려$ 앞두고, 제목에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딱! 박혀있어 대출해보았다.박물관 가는 걸 참 좋아하는데, 아이랑 가는 건 영 쉽지 않다.2년전 여름 아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을 때는 1층 밖에 보지 못했고 그나마도 다 보지도 못했..ㅜㅜ​이번에는 기필고 좀더 오래, 좀더 많이 살펴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박물관의 전반적인 걸 말해주는 책은 아니고, 주로 금동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지금은 국보 00호라는 명칭을 쓰지않는다고 하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안 사실.이전에 국보 78호, 국보 83호라고 불리우던 두 금동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본의 시스템을 따라 만든 국보와 보물의 체계를 부산고구려$ 설명해주었다. 좀더 중요한 보물이 국보인 것. 또 반가사유상은 금동, 즉 청동과 금의 결합이므로 이 재료들을 다루기 위해 석기시대, 청동기, 철기시대와 금을 다루는 것까지의 설명을 기원전의 세계 고대 문명들을 언급해가며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수능공부할 때 익히 보았던 요령식 동검과 세형동검도 나옴..​하자와 완벽옥을 둥근 형태로 깎고 만든 것을 옥벽이라고 하는데, 낙랑전시실의 옥벽을 시작으로 하자와 완벽에 대한 고사를 소개하고 있다. 석암리 9호분 옥벽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옥이 시신의 부패를 막아준다고 하여 부장품으로 넣었다고 한다. 옥을 둥글게 깎고 다듬어 만든 것을 옥벽이라고 부산고구려$ 하는데, 이것은 왕을 비롯한 최상위 계급에만 사용하던 부장품이다. 이 옥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는지 사기 염파 인상여 열전에 아래와 같이 나온다.​[사기 염파 인상여 열전]​조나라의 화씨지벽을 진나라의 소양왕이 탐내어 진나라 성 15개와 화씨지벽을 바꾸자고 제안하였다.이에 화신으로 인상여가 갔는데 진나라 소양왕이 화씨지벽만 받고 성을 안주려고 하였다. 이에 인상여가 옥의 흠집을 알려주겠다고 하며 화씨지벽을 돌려받았고 이를 높이들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던져 깨버리고 자신도 죽겠다고 협박하였다. 소양왕이 성 주겠다고 하였으나 뻥이었으므로 인상여가 화씨지벽을 몰래 조나라로 돌려보내어 옥을 지킬 수 있다.→ 옥의 얼룩진 부산고구려$ 흔적, 흠을 뜻하는 “하자”와 온전한 상태의 옥,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뜻하는 “완벽”이라는 고사가 나옴​낙랑의 옥벽은 평양의 석암리 9호분에서 나오는데 여기는 한나라에서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으로 된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도 나온다. 이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가장 이른 시점의 금제품이며 한반도에서는 한참 이후 까지도 금제 띠고리 정도의 가치있는 금 제품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즉 석암리 9호분의 주인공은 한나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낙랑의 지배세력인 것.​​​인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금과 삼국(+가야)석암리 9호분에 나온 금제 띠고리와 같이 금으로 된 유물을 통하여 삼국의 부산고구려$ 흐름도 살펴볼 수 있다. 황남대총의 은관, 금동관, 금관의 예를 들어 살펴보면..신라전시실에는 은관이 전시되어 있는데, 황남대총 남분(남성묘로 추정)에서 나왔다 이는 고구려로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고구려 관꾸미개와 동일하게 끝부분을 가위로 오려 꼬아서 깃털처럼 표현) 이는 고구려의 입장과 기준에서 부여된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 즉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것.황남대총 북분(여성묘, 아마 왕비)은 더 늦게 조성되었는데 금관이 발견되었고 남분에는 금동관이 없다. 금관이 금동관보다 더 높은 지위를 설명하므로 남분과 북분의 조성시기 사이에 신라에 정치적인 변화가 존재한 것이다.즉, 왕의 사망시기보다 왕비의 사망시기에 신라가 독자적인 힘을 부산고구려$ 갖추고자 하여 금관을 사용하는 더 높은 계급을 설정한 것이다.황남대총의 주인은 실성왕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즉 실성왕이 사망한 시기에는 신라가 고구려보다 낮은 지위를 자처하였으나, 실성왕의 왕비인 아유부인이 사망한 시기에는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은관(왼), 금관(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반가사유상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두 반가사유상 중 삼산관 반가사유상은 신라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룡사 조사과정에서 비슷한 형태의 반가사유상 머리 부분이 발견되었고, 비슷한 형태의 목조 미륵 반가사유상을 신라에서 일본 고류지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탑형보관 반가사유상의 경우 백제설과 신라설로 나뉘어 주장이 부산고구려$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관람후기​사실 블로그를 쓰는 지금은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하고 돌아온 시점..신라 은관 봤느냐? 못봤습니다 ㅋㅋ(근데 이거 경주에 있는듯..?)반가사유상 봤느냐? 봤습니다!​책읽고 박물관을 샅샅히 살펴보리라 다짐했는데..ㅎㅎ아이의 관람태도는 2년전과 비교하여 많이 자랐다. 미리 보여주었던 백제금동대향로를 직접 찾기도 하고 학습지에 동그라미를 치기도 하면서 관람하였다. 바닥에 눕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관람할 수 있는, 견딜 수 있는 시간에 비해 박물관이 너무 크고 소장품이 많았다.​사유의 방은 기획을 진짜 잘해놓은 곳이라고 생각했다.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붉게 칠해놓은 벽, 뭔가 태초의 혼란스러움을 나타낸 듯한 대형 부산고구려$ 미디어 스크린을 지나게 되고, 반바퀴를 돌아 두 반가사유상을 맞이하게 된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두 예술 작품을 맞이하는데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이 책의 저자가 삼산관 반가사유상을 보며 김유신이 바라보며 수행했을 거라고 믿는다고 하던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면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혼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거 혼자보면 뭔 재미냐 다음에 좀더 큰 아이랑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박물관의 전시를 기획하는거.. 부산이랑 서울이랑 수준 차이 너무 많이 나는거 아니야? 부산시립박물관도 가지고 있는 문화재들로 이런 기획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유의 방을 보며 부산고구려$ 느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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