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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과 결박이 나를 기다린다(행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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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ELLO 작성일24-09-02 13:59 조회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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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 2010년부터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가 있습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그것이죠.
‘지옥’을 뜻하는 영어 ‘hell’(헬)과 우리나라의 옛 이름인 ‘조선’을 합쳐서 부른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지옥처럼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신조어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삼포세대’라 함은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입니다.
‘오포세대’란 ‘삼포’와 함께 ‘인간관계’와 ‘집’까지 포기한 세대를 칭한 말입니다.
그리고 ‘칠포세대’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세대를 말하죠.

(깨달음)그 모두가 이 땅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말들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다면 이 땅에서 이루게 하실 하나님의 나라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아무리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라는 말이 언론에 돌아다닌다고 해도 거기에 주눅늘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당신이 선택한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와 영광을 이방 나라에 펼쳐보여주셨습니다.

(적용)이것은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는 하란 땅에 탄탄하게 기반을 갖춘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미지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터전을 옮기라고 말이죠.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시련이자 도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 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을 피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곳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그 길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모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40년간 애굽의 왕자로 살았던 그를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전락한 모세였죠.
그런 그에게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라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애굽의 파라오 앞에 자살꼴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그 길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던졌습니다.
왜냐햐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강남룸싸롱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길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화)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겠습니까?
그 당시 유다왕국은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사장들마저 영육간에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죠.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니 예레미야 선지자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나라가 멸망한다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유다 왕 앞에 자살골을 넣는 것처럼 죽음의 사지로 들어가는 꼴 아닙니까?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읊조린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8-9)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갖고 백성들 앞에 외치며 오히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된다는 것을 예레미야가 알고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예레미야는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다가 감옥에 감금되고 온갖 수모와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예레미야가 그와 같은 죽음의 사지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내어맡기며 주님의 사명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적용)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헬조선에 산다고 할지라도 이 속에서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도록 부르셨습니다.
모세도 예레미야도 죽음의 사지로 부르셨지만 그것은 죽음의 사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상황이 정말로 악조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사명을 이루게 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강남룸싸롱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을 거쳐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수리아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함께 최초로 공동목회한 곳이었고, 1차 전도여행 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 안정된 목회지였죠.
그래서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돌아가 안정된 목회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기근 소식을 접하고 고린도교회의 위쪽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 곧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 교회를 거쳐오면서 구제헌금을 모았습니다.
이제 빌립보의 외항 네압볼리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 항구를 지나 예루살렘교회에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안디옥교회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최종 목적지가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아니라 예루살렘이었음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이른바 드로아에서 65km 걸리는 앗소까지 홀로 이틀이나 걸으면서 주님과 단독자로 기도하며 올 때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바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예루살렘교회를 거쳐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가서 편안하게 목회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죠.
오히려 예루살렘교회에 갔다고 예루살렘에서 환란과 결박을 당해 체포될 것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은 죽음의 사지로 나아가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바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이루고자 그 뜻을 받아들였죠.

그래서 바울은 앗소에서 일행들과 합류해서 곧장 미둘레네로, 기오로, 사모로, 또 밀레도에 당도했죠.
바로 그 밀레도에 당도했을 때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 이른바 에베소교회에 먼저된 자들을 불러 당부의 말씀을 전했죠.
이른바 에베소교회의 먼저된 자들을 향한 바울의 고별설교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떻게 행했는지, 여러분들이 다 아는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어떤 눈물과 헌신으로 에베소교회를 3년간 섬겨왔는지, 여러분들이 다 들여다봤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바울이 떠나는 마당이니, 먼저된 여러분들이 에베소교회를 자신처럼 헌신과 눈물로 강남룸싸롱 잘 섬겨줄 것을 당부한 고별설교였죠.

(본문)오늘 본문은 바로 그 이후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말씀인데, 본문 22-24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깨달음) 이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을 거쳐 올 때, 에게해를 건너 드로아에서 앗소로 올 때 이미 성령님께서 말씀해주셨다는 것이죠.
예루살렘에 가면 바울이 결박을 당하고 환란을 당할 것을 말이죠.

그런데도 바울이 지금 에베소교회의 장로들, 곧 먼저된 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나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기거이 죽음의 사지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바울은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그 많은 증인들 앞에서 다짐하는 것이죠.
자기 목숨을 위한 길, 자기 육신의 안일을 위한 것을 위해 숨지 않고, 기꺼이 그 죽음의 사지로 자기 몸을 던지겠다는 거죠.

(적용) 그런데 바울의 이와 같은 결단은 이때 한 번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두로의 제자들을 만나고,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 집사의 집에서 아가보라는 대선지자를 만나죠.
그때도 그들은, 가는 곳마다 바울이 환란과 결박을 당할 것이라고 성령의 감동을 전합니다.
심지어 아가보라는 대선지자는 클라우디우스 황제때 대흉년을 예언한 선지자인데, 그도 바울의 띠로 자기 몸을 묶으면서, 네가 가면 나처럼 된다고 보여줬습니다.

그만큼 이후에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환란과 결박이 강남룸싸롱 기다린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죠.
그렇다면 저 같으면, 우리 같으면, 그곳이 죽음의 사지임을 알게 하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 길을 포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해 늦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곳을 향해 부르시는 보내시는 주님의 사명 곧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사명에 순종하고자 함이죠.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헬조선과 같은 우리시대의 상황속에서도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는 믿음의 증인으로 삼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지금 네가 사는 나라가 헬조선이고 오포세대 칠포세대라 하지만 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위해 너를 부르지 않았겠느냐?”
“하란 땅에 안정된 곳에서 미지의 땅 가나안으로 부를 때 아브라함도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위해 기꺼이 순종하지 않았더냐?”
“미디안 광야의 나이 80이 된 모세를 애굽의 파라오 앞에 맞서도록 부를 때 모세도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명에 순종하지 않았더냐?”
“유다 왕국 말기 모든 백성이 타락하고 제사장들도 영육간에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도록 예레미야를 부를 때 그 길이 수치와 굴육임을 알면서도 예레미야는 순종하지 않았더냐?”
“바울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환란과 결박의 사지인지 줄 알았지만 그 길이 하나님의 복음을 증언하는 길이었기에 기꺼이 순종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 네가 살고 있는 환경이 녹녹치 않고 죽음의 사지와도 같은 답답함과 우겨쌈을 당한다고 해도 낙심치 말아라.”
“그곳이 헬조선과 같오 온갖 포기하는 것들이 넘쳐난다고 해도 이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사명을 강남룸싸롱 이루어가도록 힘과 능력을 주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절대로 데려가는 법이 없으니, 너도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해라.”
“때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핍박과 환란을 당한다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니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오직 성령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도록 해라.”

(찬양)허무한 시절 지날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억눌린자 같힌 자 자유함이 없는 자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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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어제 그제 광주에 있는 쉼있는 교회에서 예배당 수리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고 오지 않았습니까?
스카이를 불러 예배당 지붕을 강판으로 씌웠고, 십자가 종탑의 네온을 새로 달았습니다.
또 1층 본당의 전구를 LED로 교체했고, 강대상 부근에 네일전등을 달았고, 4층 서재실에 입구가 썩은 걸 타일로 깔았습니다.

총 5명이 함께 했는데, 저와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잡부로 여러 것들을 도와드렸고, 두 분 목사님이 큰 일을 하셨죠.
그 모든 총괄은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 내려온 백성도 목사님이 목자재단의 실행이사로 참여해서 주관했습니다.

본래 그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데, 결혼을 하고 먹고 살아갈 경제문제 때문에 강남에 있는 룸싸롱에서 일을 했죠.
그곳의 조직폭력배들에게 일을 열심히 한다면서, 나중에 총무직까지 합격점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큰 사건에 휘말리면서 경찰서에 붙잡혀 갔는데, 그곳에서 아직 초짜라고 의리파 어깨들이 빼내줬습니다.

그 후에 큰 아이가 희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도저히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이가 살아나게 강남룸싸롱 되었죠.
문제는 두 번째 아이인데, 둘째 아이가 큰 아이와 똑같은 질병으로 입원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살려보겠다면서 일을 하러 다녔는데, 그 과정 속에서 그 아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죠.
그때 그 아이의 화장을 그 목사님이 직접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먹고 살기 위해 장의사 일을 도맡아서 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자신의 딸이 죽은 그 땅을 바라보며 곤지암에다 개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교회예배당이 불탄 일이 몇 번 있었고, 다른 교회 목사님이 교인 몇 몇과 짜고서 목사님을 몰아내려고 한 일도 있었죠.
또 태풍이 불 때 십자가 종탑이 넘어가려는 것을 그 목사님이 밧줄로 매서 붙잡았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셔서 지금의 곤지암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님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다고 하죠.

(깨달음)그 목사님은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기 위해 천사 같은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감히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유한함으로 어찌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셔서 하나님나라와 하나님교회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마치 죽음의 사지인 줄 알게 하면서도 그곳 예루살렘으로 바울을 부르시듯이 말입니다.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줄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알았지만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임을 바울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네가 가는 길에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
“그러나 바울아. 나는 네가 나의 복음을 위해 그곳으로 갈 줄로 생각한다.”
“네가 가는 길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지만 내가 끝까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내음성)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 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당신의 일꾼으로 강남룸싸롱 삼아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100년 안팎의 삶을 살지만 바울을 부르시고 백성도 목사님을 부르셔서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주님.”
“제가 바울이 될 수도 없고 제가 백성도 목사님이 될 수 없지만, 제게 맞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교회의 일꾼으로 사용해주세요.”
“내게 부여하신 달란트대로 주님 나라와 주님의교회를 받들어 하나님의 나라의 상급으로 삼아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다하기전까지 하나님의 사람을 데려가는 법이 없듯이, 오늘 저희들을 영광된 나라의 종들로 삼아주시옵소서.”
“매 순간 순간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성령님이 꿈꾸시는 그 나라를 위해 저희들을 사용해 주시옵소서.”

(찬양)허무한 시절 지날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억눌린 자 같힌 자 자유함이 없는 자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북팟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헬조선이요 오포 칠포세대가 넘치는 이 땅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땅에 가장 고귀한 대가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대가를 지불하셔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욱 풍성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그 풍성한 은혜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부르신 일입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바울처럼, 그리고 백성도 목사님처럼 우릴 부르신 건 아닙니다.

각자의 은사와 재능과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신 줄 믿습니다.
때로 죽음의 사지와도 같은 환란과 결박이 기다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영광으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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